정치 및 사회

미국 자유지상주의의 정신적 대부 Murray Newton Rothbard 소개(1)

leejw162 2025. 5. 18. 14:06
728x90
반응형

Murray Newton Rothbard

(March 2, 1926 ~ January 7, 1995)

소장 때의 라스바드(https://wadhwarakesh.com/murray-rothbard-author-economist-anarcho-capitalist/)

 

자유지상주의는 평등이란 말 자체를 없애 버린다. 인격의 평등이든 기회의 평등이든 결과의 평등이든 신 앞에서의 평등이든 평등이란 말 자체는 사탄의 소리로 차단한다. 그런데 미국인의 자유지상주의는 좌파가 보기엔 매우 위험하다. 좌파들이 보기엔 이네들의 자유지상에 개인에 대한 무한한 영성이 없다. 자유에 모든 타인 개별 각자를 위한 영성에 대한 나의 사랑과 구제가 없으면, 그것은 그냥 야밤 늑대의 울음소리에 불과하다. 문제는 현실에서는 영성이 잠시나마 작동할 수 있는 곳은 사회주의적 요소가 강한 수도회의 수도원 밖엔 없다.

그러기에 다음을 알아야 한다. 바로 자유의 바탕인 계약이다. 별도로 자유의 바탕인 계약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계약은 1:1의 자유개념인 평등으로 귀결된다. 정치나 경제, 문화 등 모든 것은 자유의 바탕인 계약에서 출발했다. 가장 그 대표적인 것이 고대로부터 오던 왕권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출발은 소박한 부족에서 만장일치의 계약에서 비롯되었으나, 다음 세대엔 망각하여 계급으로 차이가 벌어졌을 따름이다. 물론 이는 자연법의 원천인 인간수명이 해결을 해 주곤 한다. 천자(天子)도 종명(終命) 후엔 하나의 풀잎보다 못 하지 않는가. 역사의 흐름 앞에선 누구라도 예외가 아니다. 천자라는 황제보다 더한, 태양의 신으로 빛나던 파라오마저도 사라졌다. 바로 자연에서 계속 파장으로 오는 법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자연법의 근원은 영혼의 자유이다. 이를 정신의 자유와 연결하고 다시 모든 행위의 바탕으로 삼아 자유를 지상의 덕목으로 봐야 한다. 이에서 자유지상주의가 무한의 가치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결국 무의식에 작동만 하던 계약을 찾아내어 법정(法定)으로 할 수 있었다. 그 정신을 우리는 자유지상주의에서만 온전히 찾을 수가 있고, 또 서로들 마음으로라도 물리적 계약을 넘어 정신으로 크게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들이 예전부터 유구(悠久)하게 살아 왔다는 넓고 넓은 지평(地平)의 아시아엔 이에 대한 자료나 증빙이 유적에서 조차도 없어, 하는 수 없이 그래도 이를 가장 진보적인 자유국가라고 자타(自他)의 모두가 여기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라는 평을 받는 자유주의자들의 대부(代父) Murray Newton Rothbard에서는 있는지 찾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영성(靈性)은 자기(自己)만이 느끼는 것이고, 남에게 요구하거나 강요(强要)할 수 없는 것이다. 영혼(靈魂)에서는 타자(他者)는 모두 객()이기 때문이다. 설사 하나님의 세계에서 영혼으로 영생을 하더라도 자기는 오로지 하나로서 존재하는 存在一者일 뿐이다. 여기에서는 자유(自由)는 전혀 필요가 없고, 자연 소멸(消滅)되어 있다. 자유는 기도(祈禱)가 필요한 곳에서만 있다.

 

본 블로거의 평:

머레이 라스버드 마저도 미국인이기 때문에,

세계일반의 좌파는 물론 유럽의 자유주의자들이 보기에도 미국의 자유주의는 자유지상주의로 수퍼대국 미국 편익주의로 치닫기 때문에 다른 나라엔 코드가 맞지 않다. '시민자유'라는 자연법적 선험권을 근본으로 삼지만, 바로 모든 인류마다의 개인의 생명 보호엔 지극히 무관심해 보여 그들 스스로가 보편적 자유의 영혼적 영성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특히 개개인 인간 모두를 진정으로 위할 남북이념 체제대결로 모두의 개별적 생명을 바로 다툴 만큼 첨예해야 할 한국인으로서는 미국의 자유지상주의를 바로 이해하여 진짜 자유지상주의의 모습답게 한국정치의 실제상태로 만들어 주어야 할 인간적인 개별 의무가 한국인의 자유를 바르게 지향해야 하는 한국의 정치철학자들에게는 있다.

자유지상주의가 가장 절실히 필요하면서도 가장 취약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이는 피할 수 없는 절차적 고개로 이를 다룰 시 극도로 집중하여 불길 속의 휘발유 통처럼 신경을 다해 완전지향 무사고 무사건으로 진행해야 한다. 만약 좌파들이 요구하는대로 미국의 자유지상주의의 체제이념을 엉뚱하게 오해하여 아무 생각없이 자유지상주의를 지식사대주의자로 악평하여 악용 당하다가는 5,000만 자유한국인들이 전원 생매장으로 개죽음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작금의 세계국제정치적 상태에서 완전히 간과할 수 없게 중요한 것은 자유지상주의는 미국의 최상부 엘리트와 일본, 한국 만이 포효할 수 있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치열한 장, 초원평정의 소리이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만이 포효할 수 있듯이 미국이 아닌 나라가 자유지상주의를 포효하면 걍 쓰레기 취급 받는다. 미국의 소리 자유지상주의와 유럽발 자유주의는 유전자가 바탕부터 본질적으로 다르다. 유럽은 그 어떤 나라라도 자유지상주의 만큼은 미국에 양보를 해야 한다. 여긴 너희 장소가 아니다. 오로지 미국의 상류 엘리트만이 소리내고 기거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과 한국은 어떻게??? 이네들은 미국 귀족의 정신적 속국이다. 정신적 속국 멤버로서 인정 받고 소리를 흉내낼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은 안 하거나 못 하는 것이 없다. 미국이 한다면 모조리 다 한다. 심지어 반미주의자도 친자녀들의 미국유학이 꿈이고 보스톤이나 뉴욕 허드슨 강변 근교에 자기 가족들만의 별장을 갖고 싶어 한다. 반미도 정치적 도구로 하는 것이지 자신도 자국내 친미주의자들을 정치시장에서 압도한다면 바로 반미를 버리고 친미로 향할 것이다. 반미는 그냥 편하게 폼내며 먹고 살기 위한 생존경쟁의 무기며 도구이다. 성능이 너무나 우수하고 자기 몸에 착 달라 붙는다. 그기다가 쉽게 가난한 자들을 말로 유혹할 수 있고 신분적으로 약자를 지칭하여 안전하고 대우까지 받아 어디가도 다칠 염려가 적다.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미국은 최상층 엘리트만이 자유지상주의를 포효할 수 있으나, 일본과 한국은 대학만 나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왜냐면 이네들은 양심이란 것이 예초에 원초적으로 아주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표현을 사조(思潮) 바꾸듯이 자기 마음대로 바꾸는 것이 일상적 생활로 불리하면 기호(嗜好)의 문제로 보며, 또 타고난 성질이 정치적으로 부지런하여 일단 가입하여 행동을 개시하면 그 몫은 누가 감독하지 않아도 저절로 충분히 알아서 한다. 하급전사도 대우만 잘해주면 그 역할에 있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좌파도 그렇지만 자유지상주의자도 같은 형질을 타고 나서 수뇌부가 아니더라도 그냥 자유지상주의의 멤버이기만 하면 된다. 일본인들은 가미가제로, 한국인들은 몽골의 전사로 그 몫을 다할 것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