哲學이 서린 散文詩(1): 인간에 관한 물음
철학(哲學)이 서린 산문시(散文詩)
(인간에 관한 물음)
2025.5.16.(쇠) 장우(長雨)
철학에는 커피가 필요 합니다.
차(茶)는 이기적이고, 술(酒)은 정신을 망실합니다.
오로지 커피만이 자신과 타인을 동일시하며 천천히 자신의 길로 나아갑니다.
어느 철학자가 자기 자신이 되어 따뜻한 방의 창 너머로 바다를 응시합니다.
아직도 비가 오는 오후입니다.
차디찬 바다가 파도를 타도 그의 맘속 깊은 곳까지 왔다가 다시금 갑니다.
어디선가 멀리서 뻐꾸기 소리가 울립니다.
탁란의 가슴 아픈 소리입니다.
어쩌면 모든 것이 탁란 입니다.
산과 바다도, 들판과 하늘도, 심지어 꽃과 그림자도 탁란 입니다.
내가 사라져야 그가 옵니다.
그가 와야만 내가 다시 올 수 있습니다.
자리는 오로지 하나, 그런데 저 배는 탁란을 타고 어디로 가는 걸까?
해류를 거슬러 북극해를 지나, 배(船)탄 소년의 첫 바다까지 쇄빙선을 따라 졸졸 홀로 갑니다.
창 너머의 바다엔 배가 가고 또 갑니다.
철학자는 오로지 같은 배만 바라보고 또 바라봅니다.
망망의 모든 배가 오로지 같은 모습입니다.
같은 색깔, 같은 소리, 같은 바람, 같은 선원이 같은 옷만 입고 지나갑니다.
마을 어귀의 소년의 사랑은 변치 않고 연이어연이어 일어납니다.
세월이 가고 또 와도 소년은 다시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인적 뜸한 어귀의 샘에서 오로지 한 소녀만을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봄여름가을겨울 만 가지 바람이 불어도 소년은 오직 하나의 소녀만을 기다립니다.
신(神)의 소리이듯, 아니면 갈바람의 소리이듯 그게 다가 아닙니다.
오로지 그 소리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하지만 철학자는 소년과는 다릅니다.
오로지 그 자신을 기다립니다.
그는 산솔새가 되어 탁란을 기다립니다.
탁란에는 신의 고귀한 사랑이 잔인하게 피 서려 있습니다.
피가 고름이 되고 고름이 새순이 되고 새순이 다시 생명을 되어 또 탄락을 맞이합니다.
철학자는 방에서 고요하게 깊이 소리 내어 흐르는 온 바다를 봅니다.
오고가는 대양과 심해의 협곡과 깊어만 가는 무동(無動)에서 파도를 봅니다.
그의 책상에는 이제 아무 것도 안 보입니다.
데모크리토스도 플라톤도 칸트도 안 보입니다.
헤겔도 이미 사라진지 오랩니다.
다 낡은 고전이 되어 그의 가슴에서도 힘을 상실 당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물음만이 커피와 함께 모락모락 김을 타고 있습니다.
커피만이 아픔을 피하지 않고 홀로만 있는 철학자에게 자신을 빌려 줍니다.
그리곤 소멸로 사라집니다.
철학자는 의자에서 꿈속 가위에 눌리고, 커피는 自性을 떠나 宇宙마저 초탈(超脫)로 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