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 뇌 과학

죽음은 어떻게 진단할 수 있는가?

leejw162 2025. 6. 2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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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어떻게 진단할 수 있는가?
― 존재의 침묵을 마주하는 의학과 철학, 그리고 도덕의 경계에서

제공: 매일경제(2018-06-17 18:18:20) by 이병문,김혜순 기자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자, 동시에 가장 확실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진단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시대와 문화, 학문에 따라 끊임없이 다른 해석을 불러온다. 우리는 일상에서 죽음을 익숙한 개념으로 받아들이지만, 그 실체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생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죽음을 진단한다는 것은 단지 심장이 멈췄는지를 보는 일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경계선을 판별하는 복합적인 사고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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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의학은 가장 명확한 도구를 통해 죽음을 진단한다. 생명의 기본 조건인 심장박동과 자발적인 호흡이 멈췄을 때, 우리는 그것을 심폐사라 부르며 죽음으로 선언한다. 하지만 현대 의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뇌사’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뇌간의 기능까지 포함하여 뇌의 전체 활동이 비가역적으로 정지되었을 때, 비록 심장이 기계적으로 뛰고 있더라도 우리는 그를 ‘죽은 자’로 간주한다. 이는 단순한 생리학적 관찰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중심을 뇌와 의식으로 보려는 과학적 판단이다.

 

그러나 철학은 이 판단에 질문을 던진다. 과연 죽음은 단지 기능의 정지인가?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고 표현하였다. 이때 죽음은 생의 종결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 바뀌는 고유한 사건이다. 그에게 죽음은 타인의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나의 것’이며, 죽음을 통해서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실존을 자각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죽음을 진단한다는 것은 단지 생명의 끄트머리를 관측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서사가 끝났음을 인정하는 윤리적・존재론적 선언이다.

 

이런 철학적 사유는 곧 도덕의 문제로 이어진다. 죽음을 진단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우리는 뇌사 환자의 생명유지장치를 언제, 누구의 결정으로 꺼야 하는가?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며 남긴 의사를 우리는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현대사회가 직면한 연명의료, 존엄사, 안락사 논쟁과 맞닿아 있다. 도덕적으로 죽음은 단순히 "살지 않는다"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 자율성, 관계성의 총체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할 때에야 비로소 선언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죽음을 진단한다는 행위는 단지 생물학적 상태를 판별하는 의학의 기술이 아니라, 철학과 윤리, 사회적 합의가 중첩된 행위이다. 그것은 한 인간이 삶이라는 연극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에 대해, 관객인 우리 모두가 하나의 판단을 내려야 하는 책임의 행위인 것이다. 죽음은 언제나 타인의 것이면서도 곧 나의 것이기에, 우리는 그 진단의 순간 앞에서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죽음은 침묵하지만, 죽음을 진단하는 우리의 언어는 결코 침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도덕과 철학마저 넘어서는 한 존재의 끝에 대한 마지막 존경이며,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우리 모두의 숙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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