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 유라시아의 자유를 여는 관문
영도, 유라시아의 자유를 여는 관문

<한반도의 부산 영도! 1950년 6월부터 3년간 이곳을 통하여 서구의 자유주의 정신이 탱크와 야포, 비행기와 각종 군수 및 전략물자를 타고 대거 유입되었다. 6·25 동란으로 인류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때 우리 한국인들은 대거 자유가 뭔지 알게 되었고, 그 혜택을 어마무시하게 봤다. 자유란 고대 그리스에서 잉태된 서구철학의 산물로써 아시아의 사상이나 정신이나 문화에는 없었다.
자유의 종류에는 크게 3가지가 있다. 영미식 자유주의, 독일·프랑스식 자유주의, 러시아 및 동유럽식 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영미식 자유주의는 무역제일의 자본사상으로 번지고, 독일과 프랑스식 자유주의는 경제적 평등사상과 항상 대치가 되고, 러시아 및 동유럽식의 자유는 미분적 상태로 정신적 빈곤의 평등을 갈구하는 인민의 자유를 말한다. 그럼 중국과 한국, 일본은? 간단히 말하면 없다. 오로지 부산의 영도 덕분에 대한민국만 자유를 냠냠 현재 맛있게 먹고 있다. 문제는 이들도 자유의 약발이 떨어지면 홍콩처럼 자유가 소멸당한다.
왜 그런가? 답은 너무나 간단하다. 자유란 인간 정신의 원자적 본질인 철학의 소산으로 이네들은 철학이 없는 종족들이라서 그렇다.
한국인들이 철학이 없다고? 그렇다. 그 증거를 대라. 이네들은 평소에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면서 서로 꽤 다정해 보이지만 어쩌다 상황이 난파선으로 바뀌면 쥐새끼 마냥 선장부터 도망치고 남은 자들은 구명선에 서로 먼저 타려고 발버둥 치며, 자신이 타자마자 그 구명선이 빨리 그 위험지역을 빠져나가길 바란다.
그때는 동료도 없고, 선배도 후배도 없다. 이런 것은 대기업이 파산을 할 적에 여실히 드러낸다. 서방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이하게 한국이 그 분열의 농도가 매우 심하다. 외치고 설치는 자도 자기 몫만 챙겨주면 무조건 조용히 사라진다. 이걸 경영주는 교묘히 본능적으로 잘 이용하고 있다. 당연히 한국의 정치인들도 종자가 같으니까 그렇게 매우 잘하고 있다. 정치철학이란 아예 없다. 이합집산과 토사구팽, 아생살타만이 난무한다.
그럼 또 물어본다. 한국에도 철학자가 많지 않은가?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또 서울대 철학과 교수 등등~~~.
ㅎㅎ 웃어 주겠다. 퇴계나 율곡, 다산 등의 그런 조상님들은 모조리 도학자들이고, 작금의 서울대 교수님들도 그냥 철학을 대학에서 밥벌이로 행하고 있는 생계형 학자들일뿐이다. 결코 철학적으로 자신을 사유하고 행동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아니다. 모조리 정신적 아류들로 단계로 치면 철학을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그 하급으로 멸종된 네안데르탈인 정도이다.
동아시안들은 철학이란 정신적 유전자가 없다니까 말이다. 그리고 阿洲나 남북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철학적 태생의 경험이 전혀 없으므로 자유하고는 거리가 완전히 멀다. 그냥 자유롭게 움직이고 단체로 먹이를 쫓아 살아가는 것은 다른 동물들도 다 한다.
그렇더라고 용기를 내어 부산 영도를 위하여 다음 글을 서정(抒情)으로 추려서 올려본다. 혹여 필요한 분은 참조해 주면 감사무량이다.
끝으로 이슬람 문화권은 술탄의 나라로 그 나라가 아무리 부유하고 구성원들이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위대하게 잘 살아도 끝없는 자유를 근원적인 본질로 하는 서방이 아닌 일개(一介)의 유한한 일인중심(一人中心)의 신정일치(神政一致)를 종속적으로 강구하는 아바타의 세계로 제3지대 종속의 무리로 봐야 한다. 그들은 그 누구의 세계에서도 정신의 자유는 없고 무한한 질서만이 흐르는 대하(大河)처럼 자발적으로 영구히 집단으로 존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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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앞바다의 바람은 늘 방향을 바꾼다. 조용히 불어오다가도, 때론 태평양 너머의 거대한 숨결처럼 느닷없이 파고든다. 그 바람을 정면으로 맞이하는 곳, 그 바다와 육지의 틈바구니에 선 곳—바로 영도다. 영도는 단순한 섬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동과 서를 잇는, 지리의 경계를 넘어선 정신의 통로였다.
지도를 펼쳐 보면 영도는 부산항의 앞마당이자, 한반도 남동쪽 끝에 위치한 조그마한 섬이다. 그러나 이 섬은 언제나 작지 않았다. 조선 후기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의 항만 건설과 조선 산업, 한국전쟁 피난 시기의 산업 피난처 역할을 지나, 오늘날까지도 이 섬은 '대한민국이라는 배'의 첫 번째 조타실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선을 필요로 한다. 영도를 단지 과거 산업 유산의 공간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유라시아의 새 길목으로 바라봐야 한다. 지리적으로 보았을 때, 부산은 유라시아 대륙의 끝자락이면서 동시에 태평양과 마주한 해양 세계의 시작점이다. 그 부산의 심장과 같은 영도는, 그 접경지대에 서 있는 문이다. 닫혀 있던 유라시아의 동쪽 문이 다시 열릴 때, 자유와 교류, 그리고 새로운 문화의 흐름이 이 문을 통해 지나갈 것이다.
철의 실크로드라 불리는 유라시아 횡단 철도, 북극 항로를 따라 이어지는 해상 물류망,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디지털 정보의 흐름—이 모든 길의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영도는 그 자체로 '자유의 관문'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지 물리적인 교통이나 산업의 차원만이 아니다. 그것은 가치와 정신의 흐름이기도 하다. 독재와 통제의 질서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자유의 바람이 스미는 곳은 언제나 가장자리에 선 작은 땅이었다. 영도는 그런 땅이다. 중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경계를 넘는 첫 출발선이다.
그곳엔 이미 젊은 예술가들이 다시 모이고 있다. 낙후되었다고 여겨졌던 조선소 골목길은 문화의 창작소가 되었고, 선박 수리를 위한 오래된 독은 젊은이들의 무대가 되었다. 산업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쇳가루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향한 가능성이었다. 이 가능성은 동쪽을 바라보며 다시 서쪽으로 확장된다. 바다는 막힘이 없는 길이었고, 영도는 언제나 그 길의 안내자였다.
한반도는 과거에 늘 경계였다. 분단의 경계, 냉전의 최전선, 역사적 대결의 마당. 그러나 이제 이 작은 섬에서부터 우리는 새로운 경계를 그려야 한다. 그것은 폐쇄가 아닌 개방, 대결이 아닌 공존, 통제가 아닌 자유를 향한 경계다. 영도는 그러한 경계를 잇는 다리다. 바다와 육지를 잇고, 동양과 서양을 잇고,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영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더 정확히 말하면, 자유의 시작이다. 대륙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다시 대륙으로 흐르는 인류의 숨결이 다시 자유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할 때, 그 첫 발자국이 찍히는 곳—그것이 바로 영도가 되어야 한다.
그 조용한 섬이, 유라시아의 자유의 관문이 되기를 꿈꾸며, 나는 오늘도 영도의 바다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너머, 아직 오지 않은 자유의 물결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