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우주(국내·외 저명인사) 시리즈(12):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聖女 에바 페론
에바 페론: 민중의 심장을 안고 산 정치적 성녀(聖女), 희망의 여인

< 에바 페론(아르헨티나의 정치적 聖女)은 1919년 5월 7일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1952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녀의 삶은 아르헨티나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노동자와 중산층을 상대로 임금 인상과 복지 확대 정책을 펴 인기를 타는 페론주의 정치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역사에서 에바 페론(Eva Perón), 혹은 국민의 애칭대로 ‘에비타(Evita)’만큼 뜨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인물도 드물다. 그녀는 단지 대통령의 부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민중의 눈물을 닦아준 손이었고, 억눌린 이들의 입을 대신한 목소리였다. 찬란한 카리스마와 함께, 그녀는 곧 하나의 신화, 아르헨티나의 '희망의 여인'으로 정치적 성녀(聖女)가 되었다.
에바 페론은 1919년, 아르헨티나의 한 시골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사회적 편견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린 에바는 결코 자신의 절망에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열일곱 살이 되던 해, 그녀는 배우의 꿈을 안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났다. 무명 배우 시절은 외로웠고, 고단했으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욱 혹독했다. 하지만 그녀는 세상의 벽을 향해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벽을 뚫고 민중 속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웠다.
그녀의 인생은 1944년, 후안 페론 대령을 만나며 전환점을 맞는다. 페론은 민중의 힘을 이해한 정치가였고, 에바는 그 민중의 아픔을 몸으로 아는 여인이었다. 그들의 만남은 사랑이었고, 동시에 정치적 연대였다. 후안 페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에바는 단순한 ‘퍼스트레이디’로 남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노동자들과 여성들, 빈민들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이끌었고, 직접 구호의 손길을 내밀었다.
에바는 항상 대중 속에 있었다. 그녀는 사무실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을 직접 들었고, 사회복지 재단을 만들어 수천 명의 아이들에게 교육과 의료를 제공했다. 또한, 여성의 참정권을 이끌어내며 정치 참여의 길을 연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말로 하지 않았다. 직접 발로 뛰며 실천했다.
그러나 그렇게 활활 타오르던 생은 너무도 빨리 꺼졌다. 33세, 백혈병인 암으로 요절한 그녀의 죽음은 아르헨티나 전역에 충격을 안겼다. 그녀의 장례식 날, 수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왔고, 하늘마저도 눈물을 흘린 듯한 비가 내렸다고 전해진다.
에바 페론은 오늘날에도 논쟁적인 인물이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권력에 집착한 여인으로 본다. 그러나 많은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그녀는 여전히 ‘산타 에비타(Santa Evita)’다. 성녀처럼 자신을 태워 어둠 속을 밝힌 이, 역사보다 깊게 가슴속에 남아 있는 사람. 그녀는 말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거든, 민중 속에 묻히게 해 주세요.” 에바는 육신으로는 사라졌지만, 그 말대로 아르헨티나의 민중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사랑하면서도 싸웠던, 그 이름 하나—에비타. 그것은 단지 한 여인의 이름이 아니라, 시대를 움직인 심장의 이름이다. 우리 대한민국에도 이런 정신의 지도자가 적어도 한 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