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의 불꽃, 알 파치노
침묵 속의 불꽃, 알 파치노
<그가 어떤 신분이든 인생 자체가 하나의 연극(A Play)이다. 삶의 생로병사에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여기며 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그는 말이 많지 않다.
카메라 앞에서조차 긴 침묵을 즐긴다. 그러나 그 침묵은 공허하지 않다. 그 안에는 분노가 있고, 슬픔이 있고, 오래된 기억이 숨어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눈빛 하나, 숨소리 하나가 화면을 가득 채우면, 관객은 비로소 ‘알 파치노’를 본 것이다.
알 파치노.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뉴욕 브롱크스에서 자란 이 작은 체구의 사내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거대한 존재 중 하나가 되었다. 외모로 승부하는 배우가 아니다. 화려한 미소나 조각 같은 얼굴이 아니라, 그는 ‘존재’ 그 자체로 우리를 설득한다.
내게 있어 알 파치노는 무엇보다도 **‘변화하는 인간’**의 상징이다.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를 떠올려보라. 처음 등장할 때의 그는 말간 청년이었다. 가족의 어둠과 거리를 두려 했던 이상주의자. 그러나 영화가 끝날 무렵,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적을 제거하고, 아버지의 자리를 꿰찬다. 그 변화는 눈에 띄는 외적인 연기보다도 더 섬세하고, 조용하다. 그래서 더 무섭고, 더 아름답다.
그는 자주 부서질 듯 약한 인간을 연기한다. 《세르피코》에서는 부패한 경찰 조직 속에서 고독하게 싸우는 이상주의자였고, 《스카페이스》에서는 돈과 권력에 집착하다 자멸하는 이민자였다. 《여인의 향기》에서는 시력을 잃고 삶에 절망한 퇴역 군인 프랭크 슬레이드 역으로 오스카상을 받았다. 그 캐릭터는 인생의 쓸쓸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품고 있었고, 알 파치노는 그것을 정확히 짚어냈다.
무대에서도 그는 빛난다. 연극 무대에서 시작한 그의 연기 인생은, 지금도 틈만 나면 브로드웨이로 돌아간다. 스크린의 스타이면서도 무대의 예술가로 남으려는 그 고집이, 알 파치노라는 사람을 진짜 배우로 만든다. 그는 인기보다 **‘진실한 연기’**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사람이다.
시간이 흘렀다. 주름이 깊어졌고, 목소리엔 쉰 기운이 섞였다. 그러나 그가 등장하는 순간, 관객은 여전히 숨을 멈춘다. 나이 든 알 파치노는 더는 분노로 소리치지 않는다. 그 대신 그의 눈빛은, 마치 세상의 모든 고통을 견뎌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침묵의 카리스마로 가득 차 있다.
알 파치노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꾸미지 않는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진짜 사람’**을 보여준다. 그 진짜가 얼마나 슬픈지, 얼마나 외로운지, 때론 얼마나 잔인한지까지도 우리는 그의 연기를 통해 마주하게 된다. 그는 단지 배우가 아니다. 그는 우리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자아의 거울이다.
그래서 그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그가 울 때 나도 울고, 그가 침묵할 때 나도 말문이 막힌다. 세상엔 많은 배우가 있지만, 알 파치노는 단 하나뿐이다. 그의 연기는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고, 마음속 어딘가를 조용히 울린다. 그건 불꽃처럼 타오르지도 않고, 얼음처럼 식지도 않는다. 마치 오랫동안 꺼지지 않는 심지의 불빛 같다.
그 빛이 꺼지지 않기를,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기를.